
1. 달라진 AI 시대의 개인정보 처리 환경
1-1. 데이터 처리 방식의 변화
기존 개인정보 처리 방식은 보통 “사전 동의” 원칙에 기반해, 구체적인 수집 목적과 항목을 명시하고 동의를 얻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비롯한 다양한 AI 모델이 수많은 데이터를 자동으로 스크래핑하고 학습하는 방식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동의 절차만으로 대규모 데이터 처리 과정을 모두 포괄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특정 개인정보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데이터 활용 범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서비스 매개가 존재하지 않는 형태—즉, 연구·개발 목적 자체로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상황이 흔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전에 이용 목적을 모두 특정하기 어렵고, 모델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가 계속 재가공·결합되는 탓에 개인정보 보호의 범위나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1-2. 위험 요소의 다양화
AI 환경에서는 유출, 목적 외 이용 등 기존 위험 외에도, 유형·용례별로 각기 다른 리스크가 상존합니다. 예컨대 음성·영상 같은 비정형데이터가 AI 학습에 쓰이면, 얼굴·목소리 식별 또는 재식별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또한, AI 복원 기술이 발달해 가명 처리된 데이터라도 다른 정보를 결합하면 원본 형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결국 다양한 위험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기에, 한쪽만을 규제하거나 통제해서는 충분한 보호가 어렵고, AI 개발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신뢰 기반의 보호환경”**을 어떻게 구축할지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1-3.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정합성 요구
AI 서비스에 국경이 없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각국 법령이 조금씩 달랐던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AI 시대에는 국제적 합의나 공통 원칙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유럽 등 주요국은 AI에 특화된 개인정보 활용 기준을 마련하거나, 기존 GDPR 등 규범을 어떻게 AI에 적용할지 논의 중입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해외 사례를 분석해 정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2. 원칙 중심의 AI 규율 체계: 핵심 방향성과 사례
2-1.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AI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 규율을 강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법령이나 세부 규정만 잔뜩 추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 등은 **“원칙 중심의 규율 체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데이터 활용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미리 세부 룰을 다 정해두면 혁신을 막을 수 있고, 현실 적용에도 한계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존: 구체적 규정 위주(“어떤 데이터는 어떤 방식으로만 수집”, “목적 외 사용 금지” 등)
- 미래: AI 개발자가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적 방안”을 스스로 판단하고, 사전에 위험을 통제하도록 유도(데이터 맥락별 가명 처리, 기술적 안전조치, 정보주체 권리 보장 등)
특히 ‘비정형데이터 가명 처리’, ‘공개 데이터 활용’, ‘영상처리기기(자율주행차·로봇 등) 영상 활용’ 등 기존 법령이 고려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하나하나 규정을 추가하기보다 기본 원칙과 기업·연구자 자율권을 조화롭게 구성하려고 합니다.
2-2. 비정형데이터 가명 처리 기법 안내
2024년 2월, 개인정보위는 “이미지·영상·음성 등 비정형데이터 가명 처리 기법 안내”를 발표해, AI 시대에 부합하는 가명 처리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가이드라인이 주로 정형데이터(DB 테이블 형태 등)에 초점을 맞춘 탓에, 사진·영상·음성의 고유 특성과 AI 기술 발전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래 표는 정형데이터와 비정형데이터의 차이를 간략히 정리한 것입니다.
구분 | 정형데이터 | 비정형데이터 |
---|---|---|
정의 | DB 테이블처럼 구조화된 형식(행·열 기반) | 구조화되지 않은 형식(사진, 비디오, 음성, 문서 등) |
특징 | 연산·분석·가명처리가 상대적으로 단순 | 데이터 유형이 다양해 처리 방식·기술이 복잡, 다양함 |
예시 | 주민번호, 이름, 연락처, 주소, 계좌번호 등 | 사진, 동영상, 음성, 이메일 본문, 메신저 대화 기록 등 |
가명처리 | 특정 열(항목)을 마스킹·암호화·삭제하는 등 비교적 쉽게 적용 | 얼굴·배경 정보 등 식별 위험 요소가 많아 처리 방법이 복잡화 |
(표 1. 정형데이터 vs. 비정형데이터 차이)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합니다.
- 데이터 맥락에 따른 합리적 처리 방법 설정
- 데이터 처리 목적, 환경, 민감도를 고려해 식별 위험성을 평가한 뒤, 적절한 가명 처리 수준을 결정
- 가명처리 기술 한계 보완
- 비정형데이터는 완벽한 탐지·처리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사전 위험 평가와 안전조치를 꼼꼼히 수행
- 재식별 공격 대비 체계 마련
- AI 복원 기술 발달로 개인 정보를 추론하거나 복원할 위험 증가. 특히 음성 변조 규칙을 몰라도 원본 목소리를 복원할 수 있는 기술 등이 등장 중이라, 시스템 접근권 제한·로그 모니터링 등 종합적 방어를 준비해야 함.
3. 공개 데이터 활용 기준: ‘정당한 이익’과 안전조치
3-1. 공개된 개인정보 활용의 법적 근거
2024년 7월에는 AI 개발·서비스에 이용되는 인터넷상 ‘공개 데이터’ 처리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국내외 주요국이 이미 추진 중인 흐름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컨대 EU는 2024년 5월부터 안전 조치를 갖춘 상태라면 AI가 공개된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도 2024년 4월 발의안에서 공개된 정보를 개인정보 범위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존 개인정보 보호법에는 공개된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활용하는 행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는데, 새롭게 마련된 기준에서는 ‘정당한 이익’ 조항(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을 활용할 수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단, 이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아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목적의 정당성: 예컨대 의료 진단 보조, 신용평가 등 사회적으로 공익성이 인정되는 AI 프로젝트
- 공개된 개인정보 처리의 필요성: AI 학습에서 해당 데이터가 실제로 필수적이라는 것
- 구체적인 이익 형량: 정보주체 권리 침해보다 AI 개발의 이익이 명백히 우선한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
3-2. 기술적·관리적 안전조치와 권리 보장
공개 데이터에는 주소, 주민번호, 신용카드번호 등 각종 민감정보가 섞여 있을 수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큽니다. 이에 새 기준은 기업이 ‘정당한 이익’에 따라 공개된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안전조치 가이드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조치가 언급됩니다.
- 기술적 안전조치
- 개인정보가 포함된 도메인/URL 배제, 데이터 출처 검증·관리, 저장·전송 시 암호화, AI 학습 과정의 로깅 및 이상행동 모니터링 등
- 관리적 안전조치
- AI 프라이버시 레드팀 운영, 개인정보 처리 방침 공개, 학습 데이터 처리 기준 마련, CPO(개인정보보호책임자) 리더십 강화 등
- 정보주체 권리 보장
- 공개된 개인정보 수집 사실과 주요 출처를 알리고, 필요시 삭제나 수정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절차 마련
또한, 기업은 제시된 안전조치 전부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기술 성숙도와 자사의 특성을 고려해 최적 조합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AI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대화하겠다는 취지를 반영합니다.
4. 기업·연구자 중심의 혁신 지원과 신뢰 기반 구축
4-1. 규제 샌드박스·사전적정성 검토제 등 혁신 환경 조성
AI 시대 프라이버시 정책은 단순히 규제 강화가 아니라, 기업·연구자 스스로 개인정보 보호에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면서도 혁신을 촉진하려는 기조를 띱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제도들이 도입·운영 중입니다.
- 규제 샌드박스
- 신기술·신서비스를 제한된 환경에서 우선 허용하여 시험·검증하고, 추후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자율주행·로봇 기업이 일정 안전조치를 준수한다면, 정보주체 동의 없이도 일부 원본 영상 자료를 활용해 AI 알고리즘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 사전적정성 검토제
- AI 등 신기술 서비스 기획·개발 단계에서 정부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법 준수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적용했다면 환경 변화가 없는 한 행정처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입니다. 기존에는 사업자가 스스로 해석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았지만, 이 제도를 통해 애매한 부분을 미리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4-2. 개인정보 안심구역, 합성 데이터 활용 등
또 다른 혁신 지원책으로는 “개인정보 안심구역” 개념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 개인정보 안심구역: 기술적·관리적 안전조치를 갖추고, 데이터 처리 과정을 사전·사후로 엄격하게 통제하는 환경에서 가명정보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 이 제도를 통해 장기 활용, 재사용·제3자 활용, 빅데이터 샘플링 검사 등을 허용해, 기존 가명정보 활용 제한을 대폭 완화하려는 취지입니다.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 활용 기준도 마련 예정입니다. 합성 데이터는 개인정보를 직접 쓰지 않고도 비슷한 통계적 특성을 갖는 데이터로, 법적 제약 없이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 없이 모델 품질을 유지하면서 AI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향이 기대됩니다.
5. 신뢰 기반 구축: 자동화된 결정의 투명성·책임성 강화
AI 시대에는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화된 알고리즘이 내리는 결정이 늘어납니다. 이는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될 소지도 존재합니다.
- 완전 자동화된 결정: 채용 여부, 대출 승인, 범죄위험 판단 등
- 투명성 확보: 어떤 기준이나 알고리즘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알리고, 정보주체가 설명·의견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
- 전문 CPO 제도: 개인정보 분야에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CPO를 두고, 이가 대표나 이사회에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체계 마련
이 밖에도 공공기관 정보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보호수준 평가제’가 시행되고, ‘개인정보 처리방침 평가제’, ‘전문 CPO 제도’ 등 새로운 규범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과 기관이 AI 시대 프라이버시 문제를 보다 책임감 있게 다루도록 압박하는 한편, 시민이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 기업에게 주는 시사점과 향후 과제
AI 시대 개인정보 보호는 편익 극대화와 위험 최소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길입니다. 정부는 비정형데이터 가명 처리 지침, 공개 데이터 활용 기준, 개인정보 안심구역, 사전적정성 검토제 등 다각적인 정책 수단을 내놓으며, 기업과 연구자가 안전하게 혁신을 지속하도록 지원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 중심” 접근이므로, 결국 기업 스스로 상황에 맞춘 안전조치를 설계·실행해야 합니다.
- 원칙 철저 준수
- 정부가 제시한 기본 원칙(정당한 이익, 맥락별 가명처리, 재식별 방지 등)을 지키면서, 사전에 위험을 통제하는 노력이 필수
- 혁신 지원제도 적극 활용
- 규제 샌드박스, 사전적정성 검토, 개인정보 안심구역 등은 기업 부담을 줄이고 AI 활용 폭을 넓힐 수 있는 유용한 수단
- 신뢰 구축을 통한 경쟁력 확보
- 전문 CPO 임명, 투명한 처리방침 공개, 사용자·고객 의견 반영 등으로 신뢰도를 높이면, AI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향상
끝으로, AI가 가져올 향후 변화 속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단순 규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입니다. “과도한 규제로 AI 발전을 막지 않으면서도, 시민이 안심하고 기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